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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떠나버린 당신의 허물을 끌어안고어제 찢은 편지를 곱씹다가당신에게 한 아름 포도를보낼거에요 물론시어버린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는나는 조금 아쉽기도 해요그냥 나를 안아줄래요?어떤 내제도 없는 채로당신의 온기를 전해주고그저 기억을 부풀려그냥 나를 죽여줄래요?조금이라도 특별하고팠던지난 날의 나는 당신에게마치 감기처럼,아무 일도 없었던 양 살아갈당신이 너무 밉고 무서워요죽어버린 내 시체를 흘겨보다푸르른 하늘을 우르르기에 나는그냥 나를 안아줄래요?어떤 애정도 없는 채로그런 당신을 사랑해요받아들이기 어렵지만그냥 내게 말해줄래요?내게 어떤 감정도 없다고툭 던진 돌에 맞은 나는그조차도 샘이라고그조차도 달콤하리라고

카테고리 없음 2025.03.11

문장을 끝마치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리하지 못했습니다.나는 하루도 위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사라진다 해도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거에요.하늘은 걱정도 없이 새파랗기만 합니다. 따스한 바람이 밀려온답니다.곧 봄이 올테지요. 꽃을 피울 준비를, 꽃가루를 부드럽게 날리겠습니다.새하얀 눈이 쌓인 것은 내 맘의 겨울조차, 순수한 당신으로 피어났기 때문일텝니다.가을의 별자리가 돌아오는 것은 그저 우리가 여름내 하늘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일수도 있겠어요.내 마음의 구름을 지우고, 나를 별로 데려가줬으면 해요.소중합니다. 이 모든 날들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의 축복이에요.당신은 아름답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나는 귀를 얻었네요, 눈을 열었네요, 또 이 보잘것없는 입술로 세상을 노래합니다.당신은..

카테고리 없음 2025.03.10

계절

네 눈에 담은 세상을 내게 보여줘 깊고도 맑은 그 눈동자는 오래된 숲 속의 맑은 누구도 모르는 호수 같아. 얼마나 깊은지 그 안에 담은 세상도 이야기는 작고도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많은지 달님도 해님도 전부를 알지는 못할거야. 너는 내 바다야. 너를 그린 내 마음 속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나도 전부 알진 못해. 내 안의 세상을 탐험해줄래? 너를 보고 싶어, 마음이 산호초를 이루고, 깊디깊은 바닷속에 꽃이 한 송이 피어나 너는 내 생 가장 찬란할 봄이야. 새하얗게 물든 세상을 녹이고, 새싹이 돋아나 여길 가득 채웠어. 너는 내 가장 뜨거운 여름이야. 7년을 기다린 나는 너만을 위해 흙을 만날 날까지 목이 부서져라 노래해. 음, 너는 내 가장 수려한 가을 숲. 저 높은 창천도 내 마음을 다 담지는 못해, 떨어..

카테고리 없음 2025.03.08

태엽

-드르륵, 드륵 태엽이란, 감아둠으로써 힘을 저장하곤 그 힘을 서서히 내보냅니다. 내 시계는 멈춰버린지 오래인 양 굴지만, 안의 녀석은 여전히 살아있는 듯, 내 심장 속을 째깍이곤 합니다. 너의 오밀조밀한 작은 손이 온 힘을 다해 나의 태엽을 감습니다. 매정하리만치 잘 돌아가지 않는 태엽의 것은 저항일까요, 혹은 너의 힘을 빼앗기 위한 심술일까요? 나의 태엽이 감기는 만큼 너의 태엽은 빠르게 풀려버립니다. 우리의 시간은 감긴 태엽만큼 한정된 것이지만, 우리 둘은 언제나처럼 서로를 안고 태엽을 감으며 십 년을 버텨왔잖아. -드르르르륵 태엽이 풀리는 소리와 감기는 소리가 겹쳐져 소음을 일으킵니다. 썩 마음에 드는 소리도 아닌 것이 자꾸만 귓가에 멤도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담은 소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요,..

카테고리 없음 2025.03.08

듣고 싶어.

음, 듣고 싶어. 너의 모든 소음을 가지고 싶어. 쓸모 없는 말이든, 무엇이든 괜찮아. 너를 안아보고 싶어. 분명 부드러울거야, 따듯하려나? 그렇지 않다면 나의 온기로 널 채워줄래. 네게 키스해보고 싶어. 사랑을 속삭일 네 자그마한 입술로 나를 가득 채워줘. 음, 분명 그럴거야. 네 한 마디가 내 하루를 이루었고 나는 아직 피어나지 못했잖아. 꿈 속에 살게 해줄래? 네 맘 한구석에 작은 소란을 피워줄게. 네게 기대어보고 싶어. 어께에 기댄 채 풀밭을 뛰는 상상, 너와 함께할 미래를 그려보거나? 네가 질투해주었으면 좋겠어. 난 너에게 전부를 줄텐데 너는 항상 다정하기만 하고. 너와 여행을 떠나보고 싶어. 네가 곁에 있다면 어디라도 좋아. 푸름의 정원을 걷고, 오늘은 꿈나라로 떠나야겠어. 음, 서러운건 아냐..

카테고리 없음 2025.03.08

도롱뇽

내 추위를 어르는 유일한 존재였던 너를 이제야 안았는데 아직 많이 추워. 식은 너를 끌어안았어요, 빗속에 묻히고 싶은건 아니었는데 말야. 나는 지금 행복한가요? 희미해진 감각 탓에 더 이상 던지고픈 말도 없지만, 적어도 네가 깨어난다면 다시 나는 이 별에 던져진 채 오래를 지내겠지. 흙냄새가 나리는게 맘에 드는 풍경은 아니었어요.음, 어찌되었든 난 당신에게 그런 존재가 아니었잖아요. 처음 보았던 당신의 미소를 기억해요, 햇살처럼 빛나던 것이 당신의 천성이라 깨닫기까지 걸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요, 다정하게 내밀어준 당신의 손을 기억해요, 나는 갈라진 혀를 숨기고, 그대에게 사람의 말을 배웠어요. 이제야 느껴버린 이 미운 감정은 나와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등감이라고 불렀을까요? 어쩌면 질투였을 ..

카테고리 없음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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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너무도 크고 역겨워서어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서 피어난 싹은 나를 좀먹고꽃을 피우려다 봄이 끝나시들고 말았습니다. 어떤 열매도 맺지 못한 채잎은 눈으로 덮여다음 봄엔 이미 죽어있었습니다. 아니, 그래야만 하는 것입니다. 내게 그런 잔인하고도 끔찍한 감정을 들먹이지 마십시오! 나는 역겨운 존재랍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5.02.06

균열 - 1

희미해져가는 기억을 잡기에도 부족한 찰나를 바라보던 소녀는 눈을 감았다.아, 소녀라기에도 이미 부서진 형체, 그 안에 사무치듯 운행하는 영혼의 놀림 아래로 흐르는 안개는 썩 기분 좋은 감각은 아니었다. 터져나온 빛 속에서 울적함이 얼굴을 감싸도, 썩어들어간 눈물샘에서 더 흐를 무엇이라도 있으랴,계속해서 반복된다, 변하는가? 더욱 사무치자. 이건 고통일까? 쓰라린 가슴에 혼란스러울 여유조차 없다. 그녀의 곁을 떠나지 않는 환상의 희미한 목소리에게 쉴 새 조차 주지 못하고, 훨훨 날아오른 새가 머리 위를 도는 양, 자꾸만 씹히는 아쉬운 기억은 마치 손에 쥔 모래처럼 사르르 놓쳐버리고 만다. 점점 편안해질거야, 몽롱해지는 정신에 떠오르는 내 목소리일까? 순간 빛이 사라지고, 새파란 들판이 펼쳐진다. 봄 내음 ..

카테고리 없음 202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