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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엽

naelmaybe 2025. 3. 8. 19:33

-드르륵, 드륵

 

태엽이란, 감아둠으로써 힘을 저장하곤 그 힘을 서서히 내보냅니다. 내 시계는 멈춰버린지 오래인 양 굴지만, 안의 녀석은 여전히 살아있는 듯, 내 심장 속을 째깍이곤 합니다.

 

너의 오밀조밀한 작은 손이 온 힘을 다해 나의 태엽을 감습니다. 매정하리만치 잘 돌아가지 않는 태엽의 것은 저항일까요, 혹은 너의 힘을 빼앗기 위한 심술일까요?

 

나의 태엽이 감기는 만큼 너의 태엽은 빠르게 풀려버립니다. 우리의 시간은 감긴 태엽만큼 한정된 것이지만, 우리 둘은 언제나처럼 서로를 안고 태엽을 감으며 십 년을 버텨왔잖아.

 

-드르르르륵

 

태엽이 풀리는 소리와 감기는 소리가 겹쳐져 소음을 일으킵니다. 썩 마음에 드는 소리도 아닌 것이 자꾸만 귓가에 멤도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담은 소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고요,

 

바삐 움직이는 나는 언제부터 태엽인형이었을까요? 때로 너는 나를 안아주었는데, 그 따스함은 분명 짐승 혹은 인간의 것이었을 테야.

 

분명 째깍이는 고동은 심장으로부터 터져나오는 온기를 흘리는 리듬일테지만, 너의 태엽은 한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사람의 심장이라면 그런 식으로 힘을 잃지 않을텐데, 너의 태엽이 자꾸만 누그러지는 것은 왜입니까?

 

새파란 모습을 한 당신의 고동이 자꾸만 옅어지기를, 욕심쟁이일지도 몰라요, 난.

 

태엽인형의 머리로는 결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만, 너의 청명한 목소리가 내 귓가를 건드릴 즈음 나는 네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있지, 우리 참 오랜 여행을 함께했어.“

 

너의 목소리는 언제나 부드럽고 맑은 것이, 결코 공기를 떨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그 울림은 다시 내 심장을 뛰게 합니다. 너도 같은 감각이리라 의심하지 않아요.

 

”태엽은 누군가 감아줘야 해. 또 네가 쓰러지지 않을까 나는 매일 네 등 뒤를 확인했지.”

 

네가 가볍게 웃습니다. 어떤 의미인진 모르겠지만, 그 웃음소리가 영겁을 내 귓가에서 멤돌것이라 확신하고 있어요.

 

“이제 함께하는 여행은 아마 오늘로 끝일거야. 미안하고 또 네가 많이 걱정되거든.”

 

알고 있었습니다. 너의 태엽이 희미해지고 있음에도 너는 매일 나를 감으려 살폈습니다.

 

그럼에도 너를 모른 체 한 것은 역겨운 생존본능 혹은,

 

이미 너의 태엽이 고장나버렸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달았을수도 있겠어요.

 

“세상으로 나아가 내가 걷지 못한 만큼 걸어줘. 너라면 그래줄거라고 믿어.“

 

네 목소리가 희미해짐을 느끼고 있습니다. 동시에 흐르는 것은 내 눈가의 눈물 혹은 모조품일테지요.

 

우리가 매일 감아나간 것은 태엽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이 뜨겁고도 잔인하며 아름다운 이걸 뭐라고 부르더라, 분명..

 

“사랑해.”

 

………

 

“많이 사랑해. 네가 있어 이 어둠을 버틸 수 있었어. 그 안에서 감아진 내 태엽을 안고 너는..”

 

………

 

”빛 속에서 살아주었으면 해. 또 다른 너의 태엽을 감아줄 누군가를 만나줘. 너는 행복해야만 하니까.“

 

너는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너의 영원히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태엽은 나를 위해 풀리었습니다.

 

그래, 이제야 기억났어요. 또다시 상기시켜준 너는 영원히 내 심장을 요동칠거에요.

 

너는 나를, 또 나는 너를

 

정말이지 사무치도록,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했습니다.